더함양신문

“코 무덤, 그 치욕(恥辱)의 역사(歷史)를 아십니까.”

그러나 정유재란(丁酉再亂) 당시 독(毒)이 오를 대로 오른 ‘도요토미히데요시’(豊臣秀吉)는 천박(淺薄)하고 잔인(殘忍)한 그의 본성(本性)대로 특별지시를 내린다. “조선군의 코를 베어오면 그것으로 전공(戰功)의 증거(證據)로 삼겠다.”고. 그 첫 희생이 1597년 8월 16일, 남원성(南原城)이 함락되면서 7백여 명의 우리나라 군(軍)·관(官)·․민(民)이 학살을 당하여 코를 베인 것이다. 말하기조차 치가 떨리고 민망스런 일이 벌어진다. 그 코를 소금에 절여 왜국(倭國)으로 가져가 상(賞)을 받았단다. 야만(野蠻)의 왜군(倭軍)은 그 뒤에도 부안 등지를 비롯한 전라도 일대에서 조선인을 죽여 코를 베는 만행(蠻行)을 자행(恣行)한다.

  ▶ 일본 ‘오카야마’(岡山)현 ‘비젠’(備前)시 코 무덤

 

정유재란 당시 의병장(義兵將)으로 활약하던 중 가족과 함께 왜군에게 포로로 끌려갔다가 3년 만에 돌아온 수은 강항(睡隱 姜沆)선생, 체계적으로 유학(儒學)을 전수(傳授)하여 ‘일본 성리학(性理學)의 비조(鼻祖)’로 그들 지식인들로부터 추앙(推仰)받고 있는 분이다. 그분이 왜국(倭國)의 풍속, 지리, 군사정세(軍事情勢) 특히 ‘도요토미’의 조선침략에 관하여 정탐(偵探)한 사실을 상세히 기록한 ‘간양록(看羊錄)’이란 책을 저술하였다. 그 책에서 “코 무덤의 높이가 한 개의 구릉(丘陵)을 이루었다”고 표현했을 정도로 우리 선조들의 희생이 컸던 것이다. 코를 베이는 치욕적인 희생은 의병(義兵)들이 훨씬 더 많았다고 기록(記錄)은 전하고 있다. 갑자기 당한 전란(戰亂)이라 관군(官軍)들 중에는 도망가는 자들도 많았으나, 평소 그렇게도 가렴주구(苛斂誅求)로 착취를 당하면서 억눌려 살아야했던 민초(民草)들, 막상 나라가 위태롭자 오히려 그분들이 분연(憤然)히 일어나 의병으로 출전하여 목숨을 바치고 코를 베이는 치욕까지 당한 것이다.

 

왜적들이 잘라간 코는 일본 ‘오카야마’(岡山)현 ‘비젠’(備前) 시에 무덤으로 만들어져 400여년이라는 그 한 많은 긴 세월을 견디어오던 것을 1984년 한 유학생(留學生: 뒷날 부산외대 교수가 된 金文吉)이 발견함으로써 우리에게 알려지게 된 것이다. 그로부터 1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1992년 11월, 부산 자비사의 박삼중(朴三中) 주지 스님의 크나큰 원력(願力)과 헌신적인 노력, 그리고 주위의 뜻있는 분들의 정성으로 흙으로 변해버린 유체(遺體)를 항아리에 담아 봉안(奉安)해 왔다. 그리고 일년 뒤인 1993년 11월 26일, 희생이 컸던 부안 땅에 비로소 선조님들이 영면(永眠)할 유택(幽宅)을 마련하여 그 곳으로 모시게 된 것이다.

 

그 때 치루어진 ‘코무덤 영령(英靈) 봉안식(奉安式)’에서 나는 당시 문화체육부(文化體育部) 종무실장(宗務室長)으로 있으면서 정부측 대표로 참석하여 분(憤)하고 애절(哀絶)한 심정으로 조상님들을 추모하는 조사(弔辭)를 바친 바 있다. 박복(薄福)하게도 하필이면 그런 환란(患亂) 중에 함량미달의 국가지도자들을 만나 당하지도 않았을 그런 치욕(恥辱)을 당했으니 그 원통함이 오죽했을까 찢어지듯 저미는 마음으로 조상님들을 애도(哀悼)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쯤 되니 한 번 짚어보아야 할 것이 있다. 임진왜란(壬辰倭亂)은 조선왕조가 건국(建國) 된지 꼭 2백 년만에 당한 전란(戰亂)이다. 그 때까지는 이렇다 할 큰 외침(外侵)이 없어 비교적 편히 지낼 수 있었다. 그래서였던지 국방(國防)을 아예 외면(外面)해 버린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당시 우리 조정의 분위기를 보면 “우선 먹기엔 곶감이 달다”는 식의 “억지춘향”타령만 하고 있지 않았던가. 혜안(慧眼)을 가진 선각자(先覺者) 토정 이지함(土亭 李之菡)선생 같은 분이 건의(建議)한 강병책(强兵策)이나 특히 율곡 이이(栗谷 李珥)선생의 십만양병(十萬養兵) 건의는 공연히 평지풍파(平地風波)를 일으켜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는 선동(煽動)쯤으로 비판(批判)되었다. 심지어 “양병(養兵)은 양호지환(養虎之患)”이라, 그러니까 군대를 기르는 것은 호랑이를 길러 우환(憂患)꺼리를 만드는 것과 진배없다면서 안일(安逸)에 빠져있었으니 국방이 제대로 될 리가 있었겠는가.

 

아마 임금이나 조정(朝廷) 대신(大臣)들이 백성을 살피기보다는 오히려 핍박(逼迫)하고 괴롭힌 죄가 많음을 스스로 알았던 모양이다. 그렇기에 군대를 양성하면 그 군대가 국왕과 조정을 지켜주고 보호해 줄 것이란 믿음보다는 자기들을 잡아먹을 호랑이가 될 것이란 생각부터 한 것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나라를 방위(防衛)할 군대를 그렇게 꺼릴 이유가 없었을 테니 말이다. 결국은 국가지도층의 근시안(近視眼)과 우매(愚昧)함이 민초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그분들에게 감내(堪耐)할 수 없는 고통과 치욕을 안긴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당시 자질부족(資質不足)의 임금이나 조정의 소인배세력들만 아니었다면 코까지 베이는 그런 참혹한 치욕은 겪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임진왜란 당시 국왕과 조정이 냉철한 판단으로 이순신(李舜臣)장군을 좀 더 믿어주고 장군에게 힘을 실어 주었더라면 전라도 백성들의 그런 치욕은 미리 막아졌을 것이라는 말이다. 남해와 서해를 제패(制覇)하지 못하고는 전라도를 유린하기 어려운데 그 바다는 이미 이순신장군이 완전히 장악(掌握)하고 있지 않았던가. 장군이 바다를 지키면서 계속 주장(主張)한 바와 같이 경상도 일대의 육군과 함께 수륙합동(水陸合同)으로 왜군에 대처(對處)했더라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해전(海戰)에서 참패(慘敗)한 왜의 패잔병(敗殘兵)들, 기진맥진(氣盡脈盡)한 채 서로 살겠다고 뿔뿔이 흩어져 육지로 도망오는 것을 대비(對備)하고 있던 우리 육군이 낭중취물(囊中取物)하듯 했으면 완전히 섬멸(殲滅)할 수 있지 않았겠는가.

사태가 그런 판국인데 어느 겨를에 그 왜군이 전라도를 넘볼 수 있었을까. 20일만에 한양이 함락될 정도로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風前燈火)인데도 파당(派黨)의 이해타산(利害打算)앞에는 국가의 안위(安危)도 안중(眼中)에 없는 소인배세력들, 몇 차례에 걸쳐 건의한 이순신장군의 그런 전략(戰略)이 임금은 물론 그런 세력들의 방해로 끝까지 외면(外面)당하기만 했으니 가슴칠일 아닌가.

 

울분이 터질 일이지만 그 당시 상황을 좀 더 살펴보자.

‘도요토미’가 아무리 그들 출전(出戰)장수들에게 신경질을 부리고 다그쳐도 병력과 군수품과 군량미를 보충하는 길목인 바다에는 태산 같던 이순신장군이 버티고 있는지라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 심지어 바닷길이 막혀 추가 보급을 못 받는 바람에 평양성을 점령한 고니시유키나가(小西行長)는 더 북진(北進)을 못하고 그 곳에서 한 달 이상 발이 묶여 버리지 않았던가. 그러니 그들의 조선 정벌(征伐)은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노심초사(勞心焦思)를 거듭하던 ‘고니시’의 왜군 지휘부는 결국 기막힌 계략(計略)을 생각해 낸다. 우리 조정(朝廷)을 꿰뚫고 있던 왜(倭)의 간첩 요시라(要時羅)를 앞세워 장군에 대한 시기(猜忌)로 배배꼬인 국왕과 공연히 장군을 미워하는 특정 정파(政派)의 소인배세력들의 고약한 심보를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결국 그들의 간계(奸計)가 적중(的中)하여 우리의 국왕과 조정이 연전연승(連戰連勝)하는 자기나라 장수 말 보다 적의 간첩 말을 더 믿고 그 간첩과 한 통속이 된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되니 그들 왜군은 그렇게도 무서워하던 장군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제거할 수 있었다.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호벌치(胡伐峙)

임금 선조(宣祖)가 장군을 하옥(下獄)시킨 죄목(罪目)의 요지(要旨)부터 보자. “왕(王)을 업신여기고 조정(朝廷)을 속이고 나라를 저버리고 방자(放恣)하였다.” 무패(無敗)의 장군에게 이런 죄목을 덮어씌우도록 왕을 부추기고 충동질한 대신(大臣)들이나 이런 충동질을 하도록 유도(誘導)한 임금이나 한심(寒心)하기는 매한가지다. 나라를 저버렸단다, 누가 누구에게 할 소린지 모르겠다. 속된 표현으로 ”사돈(査頓) 남 말하네요.“ 아닌가. 백성들을 속여 가며 도망만 다닌 사람들과 열세(劣勢)의 전력(戰力)을 번연히 알면서도 죽음을 작심(作心)하지 않고는 할 수없는 전쟁터에 몸을 던져 싸운 분들과 누가 자기 나라를 지켰으며 누가 그 나라를 저버렸는가. 한심(寒心)한 것은 또 있다. 왕을 업신여기고 왕에게 방자하였단다. 이쯤 되면 한심(寒心)하다기보다 오히려 치졸(稚拙)한 것 같지 않은가. 임금을 업신여겼다. 임금에게 방자하였다. 자기 신하를 두고 임금이 할 소리는 아닌 것 같다. 장군에게 얼마나 자격지심(自激之心)이 심했으면 임금의 권위고 체면이고를 다 팽개쳤을까. 이런 죄목도 모자라 “남의 전공(戰功)도 가로챘다.”고 억지를 쓰다가 끝내는 “고문(拷問)하여 그 사실을 실토(實吐)케 하고 법(法)대로 죽임에 처하라.” 고문하여 죽이란다. 명(明)나라까지 도망가지 않고 의주(義州)에서 버틸 수 있도록 자기들을 지켜주고 나라를 구한 ’겨레의 은인‘에게 이 무슨 해괴(駭怪)한 명령인가 싶다. 그래서 그 해괴한 명령 때문에 28일간이나 옥에 갇혀 고문까지 당하면서 원래부터 위장(胃腸)이 약했던 장군이라 몸이 많이 상하기도 하지 않았던가. 배은망덕(背恩忘德)도 유분수지 참으로 기막히고 어이없는 일이다. 터놓고 말하자면 연전연승하는 장군에게 열광하는 백성들의 인기가 도망만 다니는 임금과 대비(對比)되어 그 것이 죽을죄가 된 것이다.

 

장군이 바다에서 사라지자 고대(苦待)하던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인데 그걸 놓치겠는가. 왜(倭)수군은 1597년 7월 16일,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元均)의 조선수군을 전멸시켜 개전(開戰)이후 처음으로 제해권(制海權)을 확보하게 된다. 제해권을 확보한지 불과 한 달 만에 남원성을 빼았고 연이어 전주성(全州城)은 싸움 없이 점령한다. 어찌 통분(痛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전라도가 완전히 그들에게 유린당하는 바람에 그들의 만행(蠻行)이 전 지역에서 벌어져 우리의 선조(先祖)들이 코를 베이는 그런 치욕(恥辱)과 참화(慘禍)를 겪게 된 것이다. 이쯤 되니 달리 할 말이 없어진다. 굳이 한 마디 하자면 국운(國運)이 그렇게 밖에 안 되었으니 어찌하랴. 그저 탄식(歎息)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는 그 당시 나라도 제대로 보전(保全)하지 못하면서 이순신장군같은 불세출(不世出)의 영웅(英雄)에게 심술만 부린 임금은 물론이고 파당(派黨)의 이해타산(利害打算)을 앞세워 사욕(私慾)에만 혈안(血眼)이 된 고약한 조정대신들의 그 면면(面面)만은 꼭 기억해야 할 것이다. 역사(歷史)는 소멸시효(消滅時效)가 없는 법이다. 그래서 다행(多幸) 아닌가. 이순신장군을 악랄하게 방해하고 음해(陰害)한 그 사악(邪惡)한 기록들이 자손만대로 이어질 테니 말이다. 그래서 아무리 조상들이라도 후손들에게 두고두고 비판받아야 마땅하지 않겠나. 장군을 모함(謀陷)하고 핍박(逼迫)하는 것만으로도 부족하여 투옥(投獄)하고 고문(拷問)하고 끝내 죽이기로 작심(作心)한 그런 사람들, 그들 때문에 죽어서 코까지 베이는 치욕을 당한 우리 선조(先祖)들의 원한(怨恨)만은 끝내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 후손들 모두는 ‘코무덤의 역사’도, 부안 땅에 모신 ‘한 맺힌 조상님들의 원통함’도 결코 ‘먼 옛날 일이거니’ 하고 가벼이 치부해서는 더욱 안 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심기일전 (心機一轉)하여 실패한 역사를 두 번은 겪지 않을 지혜(知慧)를 모아보자. 그러기 위해 너와 내가 다 함께 ‘진정한 우리’가 되도록 마음을 하나로 다잡았으면 더욱 좋겠다.


벽강(碧岡) 정희천(鄭熙川)

    1935. 경남 함안군 군북면 출신
    현 한국수필가협회 이사
    서울시 남부교육구청장, 문교부 교육정책실 조정관
   
국사편찬위원회 사무국장, 서울대 사무국장,
    문화체육부 종무실장, 국립중앙도서관장, 
    한국문예진흥원 부원장
    연세대, 이화여대, 한국외대 등 강사,
    건양대 초빙교수, 경희대 객원교수, 세종대 겸임교수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조정위원,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위원 등 역임. 
    88 서울올림픽 유치 유공자로 ‘홍조근정훈장’ 수상

 저서: 최신 관광법규론, 제19판. 2020년 3월 30일.

더함안신문(theham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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