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함양신문

<73> 잔인한 신혼여행

박상래-문화대안학교 교장/본지 논설위원

 

 

신비로움은 공포를 유발하거나 설렘을 자극한다. 신비의 전제는 ‘잘 알지 못함’에 있으니 알지 못함이 많을수록 공포나 설렘도 커진다. 그런 점에서 신혼이라 함은 상대를 아직 완전히 파악하지 못하여 일일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몰라 고민스러울 때가 많을지라도 함께 미래를 열어갈 설렘으로 가득한 때가 신혼여행이다. 때로는 부모님이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시고 가문을 유지하기 위해 꼬마신랑이 되는 결혼도 있고, 동생들에겐 부모의 역할을 대신하는 학부형이 되어버린 경우도 있어서 가슴 아픈 신혼도 있다. 그러나 서양의 honney moon에 동의하여 이를 그대로 번역한 밀월여행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보면 우리도 대체로 세상이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축복의 달콤한 시간이다.

만주로 독립자금을 전달하려고 떠나는 최완에겐 결혼식을 올리지 않은 아내와 함께 떠나게 된다. 경주 최씨 12대 만석꾼으로 영남대학교 전신인 대구문리과대학을 전 재산을 바쳐 설립한 인물이고 그의 둘째 동생 최완은 독립자금을 전달하려고 만주 신흥군관학교로 떠나는 길에 아내가 되기로 정혼한 이소회가 따라 나선 것이다. 도착도 하기 전에 가다가 체포되어 죽는다면 신혼 길에 죽는 비운을 맞게 되는 엄청난 위험이 올 수도 있었다. 이소회는 개성에서 신민회 활동을 하고 이화학숙을 다닌 신여성이었는데 그녀의 가산을 모두 정리하여 단순한 배우자로서가 아니라 독립운동의 주체자로 참여한 것이다. 실재로 신흥무관학교에서 행정업무를 담당하였다고 한다. 최완은 한일합방이 되자 1910년 8월에 중국으로 망명하여 상해임시정부에서 재무위원에 선출되고, 의정원 의원을 지냈다. 1926년에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가짜 편지를 받고 귀국했다가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었는데 고문과 망명 중에 얻은 지병으로 출소 사흘만에 순국하였는데 이 때 나이 38세였다. 만주 용정으로 신혼여행을 떠날 때 이미 불행은 예견되었고, 그 불행은 맞아 떨어졌다. 이소회 여사는 만석꾼 집안의 며느리지만 타국 상해시장에서 중국식 주먹밥인 치판투안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사방 100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 만 석(2만 가마니)이상의 재산을 갖지 말라는 가훈을 경주 최 부자는 실천하였다. 만 석 이상이 되면 소작료를 5:5에서 점차로 낮추고, 설령 논이 늘어나도 만 석 이상의 재산은 모두 사회에 환원했다. 이같은 부자의 나눔은 전남 구례 운조루를 지은 류이주도 실천했다. 큰 뒤주에 쌀을 부어 놓고 ‘타인능해’라 적어 누구든 쌀을 가져 갈 수 있게 하여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려는 자애로움을 실천하였다. 실재로 한 해에 삼십 가마 정도의 쌀을 베풀었다고 한다.

최준의 독립자금과 함안의 백산 안희재 선생(생가는 의령 부림면 입산리, 기념관은 부산 중구 동광동 소재)의 자금을 합하면 임시정부 필요자금 60%를 담당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독립운동자금줄 역할을 했던 백산상회를 공동 설립하였다. 최준과 안희재뿐만 아니라 많은 사업가들이 독립자금 모금에 동참했는데 LG의 구인회 전 회장, GS그룹 허창수 회장의 조부인 허만정도 이미 20대에 독립자금을 조달했다. 안희재가 최준의 독립자금을 받아 상해임시정부의 김구 선생께 전달했는데 광복 이후 백범이 경주의 최준을 찾아 독립자금을 보내준 인명기록장을 내놓았다. 셋째 장을 열어보니 자신이 몇 차례 보낸 엄청난 액수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이른바 한 푼의 배달사고도 없이 전달된 것이다. 친구 백산을 의심하기도 했던 최준은 부끄러움 마음에 백산의 무덤을 찾아 참회했다는 일화가 있다.

최준을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사는 잘 알려져 있지만 그의 둘째 동생인 최완과 그의 아내 이소희 여사의 애국 활동은 상대적으로 묻혀 있다. 그녀의 불행은 계속 되었다. 그의 아들 최병호는 다부동 전투에 참여하였다가 두 다리를 잃어 상이용사가 되었고, 그 장애의 몸으로도 부산에서 야학을 지원했다. 막내 아들과 교통사고로 함께 사망한 비운으로 일생을 마쳤다. 재산 중에 자녀의 학비만 남기고 전액 기부하라는 유언을 남겼으니 도대체 이런 분들의 유전자에는 얼마만큼의 애국과 이타정신이 있는지 짐작이 안 간다. 이소희 여사가 만주로 신혼여행을 떠날 때부터.

더함안신문(theham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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